“다른 지역에서 아무리 잘 담근 고추장이라도 이곳에서 아무렇게나 담근 고추장 맛을 따르지 못한다”
이곳의 정체는 바로 원주의 정지뜰. 정지뜰고추장은 조선시대 강원 감영에서 해마다 한 번씩 궁중에 진상되어 수라상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원주에서 생산되는 양질의 농산물을 이용해 전통적인 재래식 방법으로 제조하여 그윽한 향기와 특유의 감칠맛이 일품이다. 올해로 40년 째, 정지뜰 고추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강동춘 장인을 직접 만나봤다.
직접 맛보면 확연한 맛의 차이 알 수 있어
“직접 맛보세요” 정지뜰고추장 유명한 것이야 익히 들어왔던 터. 그 맛을 묻자 강동춘 장인은 자신 있게 직접 담근 장을 내밀었다. “아무리 맛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하더라도 시중에 판매하는 고추장과 정지뜰고추장을 비교해 맛보고 나면 바로 확연한 차이를 알 겁니다” 대단한 자신감이었다. 그만큼 정지뜰고추장은 그 맛으로 정평이 나있다.
정지뜰은 넓은 뜰 한가운데 봉천냇물이 흐르고 서쪽에는 백운산이 남북으로, 동쪽에는 치악산이 남북으로 위치해 있다. 내리쬐는 태양광선과 좋은 토질, 우거진 송림에서 풍기는 냄새와 송홧가루의 영향으로 이곳에서 만드는 고추장은 독특한 맛이 난다. 서울에서 꼭 여기에 배를 정지하고 숯과 고추장을 가져갔다는 데서 ‘정지뜰’이라는 이름이 유래했을 정도. 예로부터 원주 사람들은 먼 곳에서 온 손님에게는 꼭 정지뜰고추장을 선사했다고도 알려져 있다.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입니다. 입에 화한 맛을 내면서도 금세 가십니다. 찌개를 끓여도 맑고, 특유의 감칠 맛이 있죠”
강동춘 장인은 올해로 나이 78. 약 40년 정도 고추장을 만들고 있다. 아들 김우섭씨에게 전수해 함께 하고, 또 뒤를 이어 갓 군을 제대한 손자까지 3대째 정지뜰고추장의 맛을 이어오고 있다. 강동춘 장인은 처음에는 판매 목적으로 고추장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80년대에 노인 학교 학생들 100여명과 함께 서울의 젊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고추장을 알려주자는 목적으로 고추장을 만들어 홍보했던 것이 입소문을 타고 지금에 이르게 된 것.
재래식 전통 방법 고수, 양 늘리고 싶어도 못 늘려
유명한 정지뜰고추장을 만드는 방법을 물었다. 재료는 메주가루, 찹쌀가루, 고춧가루, 엿기름가루, 소금, 물 등. “쌀과 떡메주를 함께 쪄서, 살짝 띄운 다음, 곱게 분쇄를 합니다. 이후 삶은 찹쌀가루 반죽을 방망이로 치대면서 고운 고춧가루 등을 더합니다. 재료는 전부 국산만을 사용해요. 고추농사도 절반은 직접 짓고, 나머지 절반은 계약재배로 직접 일일이 확인해 사용합니다” 한 번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의 양만해도 찹쌀만 5가마, 총 400kg이 들어간다. 항아리에 넣고 햇빛을 쬐여 가며 1년간 숙성시키면 비로소 완성된다.
“옛날 전통 방식을 고수해 담그기 때문에, 주문이 늘어나도 양을 늘리지 못합니다” 만든 이후에 관리도 힘들다. 햇빛을 봐야 해서 뚜껑을 덮어주고, 열어주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최근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뚜껑을 열지 못하고 비닐을 씌워서 관리 해 주며 신경쓰고 있다.
연 매출 2억, 입소문 타고 주문량은 계속 늘어나
이렇게 제대로 만들어 진 장맛은 전국적으로 인정받는다. 현재 농협으로 50% 정도 납품하고, 나머지 50%는 개인 주문으로 전량 판매된다. 가격은 kg에 18,000원 선. 한 번 먹어본 사람들은 또 재구매를 하고, 주변에 소개를 하기 때문에 매년 주문량은 늘어난다. “인터넷 주문의 경우 처음 시험 삼아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 주문하는 단위가 적지만, 전화로 지속적으로 주문하신 분들은 믿음을 가지고 큰 단위로 주문을 하세요”
원주 지역에서도 고기 집에서 후식으로 먹는 막장 찌개나 막장 칼국수가 유명한 만큼 주문이 이어진다. 농협판매 금액만 1억 정도. 연매출은 2억에 이른다. 그 놀라운 판매실적에 ‘6시 내고향’ 등 방송에서 다뤄진 적도 손에 꼽을 수 없이 많다.
얼마 전에는 한국의 맛을 그리워하는 LA 교포들이 초청해 재료를 들고 가서 시식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감사패도 받고 또 와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외국에 들어갈 때 1년 치를 미리 사서 입국하는 손님들도 많다고. 전통적으로 장을 만드는 법을 궁금해 하는 이들을 위해 체험 학습도 진행한다.
고추장, 된장 등 장은 이제 직접 담그는 사람이 없이 사 먹는 추세다. 이에 전통 고추장의 명맥을 이어가 주는 것이 고맙다며 고객들 중에는 전화를 해서 고마움을 표현하는 분도 있을 정도다. “값은 따질 수 없는 것이니 우리 자손들도 전통 고추장을 먹을 수 있도록 계속 이 전통을 이어 달라는 부탁을 해 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뿌듯하지요”
강동춘 장인이 내어 준 고추장 맛을 본 소감을 묻는다면? 바로 주문해 앞으로도 계속 맛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 답이 될까? 한 번 맛보면 다른 고추장은 입에 댈 수 없다는 정지뜰고추장을 모두에게 맛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