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사주지 지공 철웅스님

광덕사주지 지공 철웅스님

김태…

천안시 특집/ 광덕사 주지 지공 철웅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 말사

호두나무의 전설을 간직한 천년 고찰 광덕사

주지 지공 철웅 스님

 

나뭇잎을 스치고 다가오는 시원한 산바람, 절정으로 치닫는 풀벌레들의 연주 소리, 당장에라도 몸을 담그고 싶은 욕구가 앞치락 뒤치락 하게 만드는 청량한 계곡물까지. 광덕사를 찾아 오르는 광덕산의 산새에 등산객은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면 5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웅장한 노목을 만나게 된다. 한눈에 봐도 거대해 보이는 이 보호수는 광덕산에 터를 잡고 사는 작은 다람쥐들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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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나무 시배지

광덕사 입구로 들어서면 고려 충렬왕(1290) 유청신이 심었다는 큰 호두나무가 나그네를 반겨준다. 알고 보니 이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호두나무다. 충남 천안 광덕산 기슭에 자리한 광덕사가 호두나무 시배지였던 것이다. 천안 하면 호두과자가 유명한데, 그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유청신은 당시 외교적 수완이 뛰어나 충렬왕의 총애를 받았는데, 원에 갔다가 돌아오며 호두나무 열매와 묘목을 가져왔다고 한다. 산 아랫마을에 살았던 유청신이 묘목은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자기 집 뒤 뜰에 심었다고 전해온다. 높이 20m, 둘레 3,7m로 경건한 마음을 들게 하는 이 호두나무를 바라보며, 유구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 첫 삽을 떴을 그 날을 잠시 상상해 본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광덕사를 재건하다.

광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로 신라 진덕여왕(652)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 조선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다가 지난 1985년 현 주지 지공 철웅 스님에 의해 재건되었다. 철웅 스님은 40년 전을 회상하며 폐허가 된 광덕사를 재건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72년 찬바람이 시린 겨울 철웅 스님은 광덕사를 방문했다. 그때만 해도 다 허물어지고 폐가로 남아 있는 게 여간 마음에 걸리는 게 아니었다. “사실 광덕사는 조선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이 이곳에서 수도를 하며, 땅을 시주해 조선 시대 때는 이곳이 충청남북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제일 큰 절이었어요. 89개에 달하는 부속 암자에 누각이 8, 종각이 9개나 됐죠. 광덕면 대부분이 절터라고 봤어요. 그렇게 번창했는데, 임진왜란 때 다 무너진 거죠. 그 후에 토지개혁을 하며 절 땅이 다 쪼개져서 온데간데없어지고 이 터만 남은 거예요.” 철웅 스님은 출장길에 하룻밤 묵으러 들렸다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본사 마곡사를 찾아가 밤새 고민한 결심을 밝혔다. “제가 광덕사로 가겠습니다. 제가 광덕사를 재건하겠습니다.”

 

광덕사로 거취를 옮긴 철웅 스님은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불사라는 것이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부처님의 가피를 받고자 하루 8시간씩 천 일 동안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1975년 부산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과 인연이 닿아 지원을 받았다. 지장전과 천불전을 완성하고 대웅전을 시작하려는데, 회사에 어려움이 닥쳤다. 공사가 중단됐고, 5개월의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렸다. 외상으로 사들인 나무들은 스님에게 빚으로 남았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새로운 인연이 닿았다. 서울에서 만나자고 해서 올라갔더니 30대 중반의 젊은 청년이었다. 그와 함께 광덕사로 내려왔다. 절을 둘러보더니 그는 스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중단된 대웅전부터 시작해 광덕사의 옛 모습을 전부 복원했는데, 그가 바로 한일합섬 창업자 김한수의 아들 김중원 회장이었다. 그리고 1985년 철웅 스님은 광덕사 낙성식을 거행했다. 1973년 천일기도 후 약 10년 만에 완공된 것이다. 이후 철웅 스님은 절을 떠나 갑사와 마곡사 주지를 마치고 여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2010년 다시 광덕사로 돌아왔다.

 

호두나무 전시관 건립 추진

절이 재건된 후, 역사적 사료가 되는 문화재 자료와 보물이 드러나며 현재 광덕사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고 있다. 철웅 스님은 이곳으로 돌아와 문화재청의 지원으로 건물 4채를 더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발원이 남았다. “이곳이 우리나라 호두나무 시배지거든요. 그래서 제가 광덕사 경내에 80평 규모의 호두나무 역사 전시관을 세울 계획이에요. 주말이면 수백 명의 등산객이 산을 오르는데, 이곳에 들려서 잠시 구경도 하고, 호두과자도 만들어서 판매해 사찰 재정 자립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에요. 요기까지 하면 이제 내 일은 끝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절을 하는 이유, 하심하기 위한 것.

전대미문의 전염병 코로나19로 인해 최근 사찰을 찾은 신도들을 보기가 쉽지 않다. 스님은 꼭 절에 와서 기도할 필요 없다며 가정에서 마음을 닦는 공부와 수련을 이어가면 된다고 말했다. “절에 오면 절을 하는데, 그 이유가 하심, 마음을 아래로 내린다. ,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기 위함이에요. 자신을 낮추는 하심을 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아무런 장애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자존심, 아상 등 이런 것을 내세워서 하심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절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계속하는 거예요. 그런데 가정에서도 하면 돼요. 부처님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절을 하면 됩니다. 내가 있는 곳이 법당이다 생각하고, 절을 하며 나를 낮춘다’, ‘하심한다.’ 그렇게 나에게 가르치는 것에요.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가도 .’ 하심하지 못한 것을 알아차리면 다음에 다시 하심하고. 이러한 과정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하심하는 마음을 내게 돼요. 그렇게 하나둘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가정은 물론이고 사회와 국가도 불협화음 없이 잘 작동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 가정에서도 절에서처럼 수행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스님이 합장했다.

 

업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유마경-

세상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인연 따라 일어나는 것일 뿐 거기에는 나도 없고 느끼는 자도, 행위하는 자도, 실체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착한 일이건, 악한 일이건 그 업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경내에 쓰여진 유마경의 한 소절이 산을 내려오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업에 따라 일어나는 일이니 그 누구도 미워하거나 원망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오늘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행동을 일으키기 전에 한 번 더 숙고해야겠다는 생각이 일어났다.